대구북구고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예갑수 씨. ⓒ에이블뉴스
에이블포토로 보기▲대구북구고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예갑수 씨. ⓒ에이블뉴스
“갈 데 없어 가는 게 '장애인 행정도우미'라고 여겼죠"
예갑수 씨, 졸업 후 취업까지 꼬박 2년, 그래도 희망을

“2009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제야 취업을 한 거죠. 그동안 마음고생이 워낙 심해서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일만하고 싶은데……, 그게 또 쉽지만은 않습니다.”

지난 1월 24일부터 대구북구고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예갑수(28, 뇌병변장애 2급) 씨. 1급 직업상담사인 그는 요즘 빈 일자리 구직자 연결은 물론, 전화 응대, 구직자 등록 및 상담, 업체 개발, 구인 업체의 채용 여부 및 구직자 취업 여부 확인 등의 업무를 맡아 하고 있다.

제대로 월급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지, 요즘 그는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.

그 몸으로 출근은 어떻게?

경북 칠곡이 고향인 그는 2009년 2월 경일대학교(경북 경산)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.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한 달 동안 실습도 했지만 그 많은 복지관들에는 그를 위한 빈자리가 없었다.
하지만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맨 먼저 취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.

나름대로 '스팩'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해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직업훈련을 받았다. 대구직업전문학교에서 6개월간 사무과정 직업훈련도 받았다. 하지만 그저 훈련뿐이었다.

지난 겨울의 끝자락에서 졸업을 했는데, 어느새 또 다른 겨울이 오고 있었다. 뭔가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.

목발 2개에 의지해 걸어야 하기에 힘으로 하는 일은 일단 제외. 앉아서 하는 사무직을 찾았다. 직업상담사 자격증이 뭔가 앞 길을 열어줄 것 같았다. 책을 사서 집에서 공부한 지 3개월 여, 2010년 3월, 1차 합격에 이어 4월 2차 합격, 5월말에는 드디어 새로운 '희망 카드'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발급받았다.

자격증이 생기면 그래도 취업이 좀 수월하겠지. 6월 초에는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에까지 갔는데, 떨어졌다. 다시 대구 근처에서 또 몇 군데 면접을 보았다. 번번이 탈락이었다.

“안되더라고요. 장애가 심하니까. 제가 특별히 능력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데다, 사실 가는 곳마다 우선 딱 보면 능력보다는 장애부터 먼저 걱정을 하는 거예요.”

“몸이 그래가지고 출퇴근은 가능하겠느냐?”

“통근차가 없는데 버스 타고 출근하기 어렵지 않겠느냐.”

“몸이 그래갖고 일은 제대로 할 수 있느냐?

거듭되는 취업 실패에 좌절감이 밀려왔다. 또 다시 가을이 오고 있었다. 자격증을 딴 후 나름 용기를 가졌었는데, 어느새 기가 죽고, '이러다 취직을 못하는 게 아닌가' 하는 위기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.

그리고……, 그는 2010년 9월 1일 집 근처 주민센터의 행정도우미 일을 시작했다.

“그 때는 정말 돈은 필요한데, 막말로 갈 데가 없으니까 가는 곳이 주민센터 ‘장애인행정도우미’라고 생각했거든요.”

월급 70여만 원의 장애인 행정도우미에 대해 잘 몰라서 관련 까페에도 가입했다. 아니나 다를까 불만의 글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. "공익근무자도 자기를 무시하고, 사회복지담당자도 말을 까칠하게 한다"는 등의 게시 글을 보니 더 하기 싫었다.

“그런데 제가 다닌 칠곡 국우동 주민센터에서는 사람들이 다 좋았어요.”

잔뜩 웅크린 마음으로 조심스레 첫 발을 내디뎠는데 생각 밖의 따뜻한 마음들이 있었다. 동갑나기 공익근무자와는 친구가 되었고, 또 다른 공익근무자 동생도 생겼다. 사회복지 담당 누나는 가끔 맛있는 것도 사주며 무척이나 살갑게 대해주니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.

“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. 일단 행정도우미 일은 시간은 많으니까 뭔가를 준비하기에는 참 좋은 것 같아요.”

집에서만 있던 사람들이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. 일을 하려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만큼 취직을 해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에 먼저 대인관계 스킬(기술)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는 적합하다는 것. 결국 어디든지 스스로 대처하기에 따라 하는 일이 싫어질 수도 있고,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.

“크리스마스 때 였어요. 연말이라 이웃돕기 물품이 많이 들어오잖아요. 그럼 그걸 아무한테나 나눠주는 게 아니고 수급자나 한 부모 가정이나 독거 노인이나 그런 분들한테 주는데, 그 분들한테 제가 일일이 전화를 다 돌려요. ‘어디 교회에서 후원이 나왔으니 도장 가지고 나오셔서 가지고 가세요’ 하면 그 분들이 되게 고마워하세요. 전화 받으시는 분이 ‘고맙습니다’ 하면 저도 신이 나서 또 다음 전화를 하는 거죠. 내가 주는 것도 아닌데 그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막 기분이 좋아지고 그렇더라고요. 제일 보람있고 기억에 남더라고요.”

대구북구고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예갑수 씨. ⓒ에이블뉴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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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평생 직장은 다른 곳에서

그는 '행정도우미'를 하면서도 다른 일자리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. 멀리 서울도 마다하지 않았다. 하지만 또 다시 실망은 이어졌다.

“한 번은 서울에서 취직이 됐어요. 그런데 나중에 전화가 왔더라고요. 지역 거주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가 없어서 안 되겠다고. 그러니까 저를 본 게 아니라 제 장애를 본 거죠. 씁쓸하더라고요”

또 한 번은 고용센터에서 장애인 직업상담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. 직업상담사 자격이 있고 장애인이니까 '딱'이다 싶었다. 하지만 서류에서부터 탈락이었다. 수급자나, 보훈대상자 자녀 등 우대 항목에 그는 해당되지 않았다.

끝없는 구직 신청에 지쳐갈 무렵 대구 북구고용지원센터에 취업했다. 사실은 전에도 한 번 응모해 탈락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. 하지만 이번에는 장애인 채용에다 출퇴근은 버스로 가능하다고 큰 소리를 쳤다. 일단 합격해야 했기에. 그렇게 그는 드디어 기간제 구인상담직에 취업 했다.

물론 월급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. 주 5일 근무에 일당으로 하루 4만500원 정도의 급여. 활동에 따라 인센티브도 있다. 다들 쟁쟁한 경력들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경력없는 직업상담사라 그냥 이 정도면 만족하기로 했다. 그렇게 힘든 취직을 하지 않았는가.

“몸이 좀 괜찮았으면 누나들이 많으니까 싹싹하고 애교 있게 대하면 괜찮을텐데, 몸이 이래서 그렇게 하면 부담스럽게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.”

하지만 28살 예갑수 씨는 그리 마음이 편치 않다. 현재 직장이 기간제라 오는 11월 말이면 근무 기간이 끝난다.

“집에서는 공무원을 준비하라고 하세요. 제가 생각해도 중증장애인이 근무하기 가장 좋은 여건은 공무원밖에 없는 것 같은데, 그게 어렵잖아요. 아는 형은 3년간 내내 공무원 준비를 하다 30살을 넘기고나니 지금은 100만 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거든요. 겁나죠 저도 그렇게 될까봐.”

지금 이 일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장기 플랜을 짜야 한다. 사실 출퇴근도 문제다. 이 정도 급여로는 자동차 구입은 도저히 어렵다. 힘들긴 하지만 미어터지는 만원버스에서 두 목발에 의지해 선채로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출근하는 수밖에 아직은 다른 방도가 없다.
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. 계약 기간이 끝나는 일년 후가 걱정이다.

“이젠 정말 마음 편히 일하고 싶은데, 막상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. 일반 사업장에 취업이 잘 안 되는걸 제가 알잖아요…….”

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은 놓을 수가 없다.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기에.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의 삶의 질을 결정지을 일자리이기에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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